피플
2026. 08. 20
PM의 기획노트 | 1편. 학교의 담장을 허물었을 때 일어나는 일
에브리타임 연합게시판 MVP 론칭 회고
2026년 7월 1일, 마침내 '연합게시판'을 세상에 선보였다. 전국의 대학생이 소속 학교와 무관하게 하나의 공간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곳. 자유게시판, 시사·이슈, 정보게시판, 홍보게시판, 비밀게시판까지 다섯 개로 처음 문을 열었던 공간은, 한 달이 넘은 지금 열여덟 개로 확장되었다.
에브리타임의 게시판은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늘 캠퍼스 ID라는 단위에 묶여 있었다. 글 하나가 생성될 때마다 '어느 학교의 글인가'가 필수 데이터값으로 따라붙는 시스템이었다. 연합게시판은 서비스 역사상 처음으로 그 필수값을 떼어낸 시도였다.
지난 5월 말 출시한 '지역채팅'이 공간적 범위를 '우리 학교'에서 '우리 동네'로 확장했다면, 이번 연합게시판은 그 울타리를 아예 전국 단위로 열어버린 파격적인 확장이었다.

연합게시판 기획의 시작: 정기 데이터 점검, 그리고 새로운 문제의 정의
시작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유저 행동 데이터 분석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학년별·캠퍼스별 이용 패턴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신호들이 포착됐다.
가장 눈에 띄는 신호는 고학번 유저들의 행동 변화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내 이슈보다는 취업, 커리어, 개인적 관심사에 대한 니즈가 훨씬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일 캠퍼스라는 공간 안에서는 나와 세부 관심사가 같은 동문을 찾기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유저들은 학교 울타리 너머의 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노트에 이 문장을 적어두고 되짚어보니, 근거는 이미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첫째, 캠퍼스 자유게시판에 학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고양이나 음식 자랑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과 취미를 담아낼 전용 그릇이 없다 보니 자유게시판으로 흘러넘친 대화였다.
둘째, 디지스트(DGIST) 총학생회로부터 공식 요청서가 들어와 있었다. KAIST, UNIST, GIST, DGIST, POSTECH, KENTECH 등 6개 과학기술원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연합 게시판을 열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체육교류전, 학술교류제 등 오프라인 교류만 연간 12회에 달했지만, 정작 상시로 소통할 온라인 공간은 없다는 이유였다. 학생회가 직접 요청서를 작성해서 보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무엇보다 명확한 데이터였다.
셋째, 커머스팀과의 논의에서도 힌트가 나왔다. 국내 최저가 수준의 학생 할인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Z세대 전문 커머스 플랫폼인 ‘에브리유니즈’를 몰라 못 사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모이고 퍼져나갈 '전국 단위의 판'이 부재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월 말 출시한 '지역채팅'의 데이터가 확신을 주었다. 론칭 전 팀 안에서는 '캠퍼스 채팅이 죽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지역채팅 활성화와 함께 캠퍼스 채팅지표도 같이 올라갔다. '우리 학교끼리 이야기하고 싶은 니즈'와 '학교를 넘어서고 싶은 니즈'는 서로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사실을 지역채팅이 증명해 준 것이다.
지역채팅 데이터로 검증된 이 사실을 바탕으로 1-pager 가설을 수립했다.

목표 지표는 유저 1인당 월평균 게시글 조회수 +19% 상승, 그리고 일일 활성 사용자 수(DAU)의 대폭 반등까지 등 꽤 자신 있게 쓴 숫자가 많았다. 지금 다시 보니 상당히 과감했던 목표였다.
타협할 수 없었던 기획 원칙 6가지
기획서를 쓰는 시간보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데 시간이 더 들었다.
➀ 기존 게시판 코드 위에 얹지 않는다.
가장 비싼 결정이었다. 기존 캠퍼스 게시판 시스템에는 오랜 시간 쌓인 레거시와 분기문들이 얽혀 있어 캠퍼스 ID를 옵셔널로 바꾸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별도 시스템으로 새로 짓게 되면 향후 코드 두 벌을 운영해야 하고, 기능 하나 붙일 때마다 작업량이 늘어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신규 개발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레거시 위에서는 확장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게시판별 속성 제어, 특정 학번/그룹 제어, 이미지 피드형 확장까지. 결과적으로 이 결정이 출시 후 2~3주 단위로 빠르게 대응하며 게시판을 열여덟 개까지 늘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➁ 광고 지면은 MVP에 처음부터 넣는다.
우여곡절이 가장 많았던 지점이다. 스코프를 줄이자는 논의가 나올 때마다 광고 지면을 빼자는 의견이 함께 나왔다. 하지만 신규 지면 없이는 이 대형 프로젝트가 회사 안에서 지속 가능한 당위성을 얻기 어려웠다. 사업적인 BM을 사후에 얹는 건 처음부터 설계에 넣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크다. 유저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서비스가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할 비즈니스 구조를 초기부터 다져두어야 했다.
➂ 작성자의 학교 태그는 노출한다.
가장 오래 붙들고 고민했던 대목이다. 전국 단위 익명 공간에 작성자의 소속 학교를 노출하는 건 불필요한 과열이나 집단 간 비교 같은 부작용 리스크가 존재했다. 하지만 학교 태그를 지우면 연합게시판은 '아무 특징 없는 일반 대학생 커뮤니티'로 전락한다.
블라인드에서 회사명 노출이 콘텐츠 소비와 바이럴의 핵심으로 작용하듯, 우리가 가진 강력한 자산(학적, 캠퍼스, 학번 인증)을 콘텐츠로 바꿔주는 유일한 장치가 학교 표시였다. "○○대 학생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은 대화는 학교 태그가 없으면 아예 시작될 수 없다.
결국 리스크는 운영 모니터링 강화와 게시판별 노출 옵션 같은 안전장치로 관리하고, 학교 태그는 유지하기로 했다.
➃ 내가 못 들어가는 게시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MVP에는 조건부 게시판이 없어 발동조차 하지 않는 정책이었지만, 설계 단계에서 못을 박았다. 접근 권한이 없는 게시판은 목록에서도, 검색에서도, 딥링크에서도 완전히 은닉되어야 했다. 나중에 학번별·전공별·학적별 게시판을 열 때 한 번이라도 새면 그건 버그가 아니라 대형 사고다. 지역채팅을 개발하며 이미 검증한 원칙이기도 했다.
➄ HOT 게시판은 MVP에서 제외한다.
가장 아까운 결정이었지만 선을 그었다. 기존 캠퍼스 게시판의 HOT 기준을 트래픽 규모가 전혀 다른 전국 단위 게시판에 그대로 쓰면, 소수의 공감만으로 전국 HOT에 올라가 여론이 왜곡될 위험이 컸다. 같은 이유로 초기 대표성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홈탭 노출도 보류하고, 게시판 탭 하단과 배너/푸시 랜딩을 통해 유입을 조심스럽게 타게팅했다.
➅ 채워지지 않을 게시판은 열지 않는다.
출시 하루 전에 내린 결정이다. 당초 계획은 자유, 시사·이슈, 정보, 홍보, 비밀, 유머, 핫딜까지 7개였다. 그런데 배포 직전 리허설을 돌려보다가 유머와 핫딜 게시판을 전격 제외했다. MVP 스펙상 첨부파일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못 올리는 유머 게시판이나 상품 사진 없는 핫딜 게시판은 유저가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텅 비어있는 게시판을 첫 화면에 내거는 건 서비스의 미완성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게시판은 첨부파일 지원이 준비되는 시점으로 배포를 미뤘다.
정리하면 연합게시판 MVP는 의도적으로 가볍게 출발했다. 이미지 첨부도, 스크랩도, 검색도, 쪽지도 없었고 게시판도 단 5개뿐이었다.
"이걸 정말 게시판이라고 낼 수 있나?"라는 내부의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PM으로서 내 답은 하나였다.
"가볍게 내고, 데이터를 보고, 빠르게 붙인다."
출시, 그리고 데이터가 증명한 유저 체류의 밀도
7월 1일 오픈 후, 연합게시판은 첫 주부터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출시 1주 차 합산 참여도(Engagement)는 전년 동기 대비 +75.7%를 기록했고, 모니터링 화면에 수치가 가파르게 쌓일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찾았다, 유저들이 진짜 원했던 공간.'
한 달을 다 채우고 뽑아본 숫자는 흥미로웠다. 7월 한 달간 글과 댓글 작성 합산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3.9%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대학 커뮤니티의 숙명과도 같은 '방학 시즌 계절성'을 이겨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7월 방학 기간은 앱 전체 이용량이 떨어지는 구간이다. 전년도 같은 기간 일평균 작성량이 -37%가량 감소했던 반면, 2026년 7월은 오히려 전월 대비 +23.0% 증가했다. 방학인데도 유저들이 앱에 들어와 계속 글을 써 내려간 것이다.
특히 댓글 지표의 성장이 눈부셨다. 댓글 작성량이 전년 대비 +65.4%나 늘어났다. 글이 늘어난 건 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지만, 댓글이 그보다 더 늘어났다는 건 그 판 위에서 유저 간의 진짜 대화가 오갔다는 뜻이었다. 유저들은 새 게시판에서 서로에게 더 자주, 더 깊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기분 좋은 지표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당초 기대했던 유입 데이터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1-pager에 적었던 당찬 목표 중 'DAU 증가'라는 축은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았다. 글과 대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유저 저변 자체가 단숨에 확 넓어지는 드라마틱한 숫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솔직히 뼈아팠다. 글은 이렇게 많이 쌓이는데, 왜 유저 유입의 숫자는 묵묵부답일까. 월간 보고서를 쓰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데이터를 한 겹 더 뜯어보다가, 전혀 다른 축이 무섭게 상승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유저 한 명이 하루에 글을 읽는 횟수는 방학이면 보통 10% 이상 떨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전월보다 늘어났다. 유저 1인당 글과 댓글을 쓰는 '작성 강도'는 전월 대비 무려 70% 이상 껑충 뛰어올랐다. 앱에 들어와 머무는 '세션당 평균 참여 시간' 역시 전월 대비 약 53%나 늘어났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온 유저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이 읽고, 훨씬 자주 쓰며, 훨씬 오래 머물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의 숫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아, 우리가 만들어낸 건 단순한 유입의 수치가 아니라 '소통의 밀도'였구나."
기획 당시 세웠던 두 가지 큰 가설을 놓고 보면, PM으로서 내린 성적표는 명확했다. 콘텐츠의 밀도를 다지는 첫 번째 가설은 증명되었지만, 그 밀도가 새로운 유저 저변으로 번져나가는 두 번째 가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채 과제로 남았다.
데이터 속 예상과 달랐던 반전 사실
기획서에는 없지만, 연합게시판 론칭 후 달라진 뜻밖의 유저 행동 패턴들도 있었다.
먼저, 주말에 커뮤니티가 살아났다.
가장 예상 밖의 데이터였다. 원래 대학 커뮤니티에서 주말은 침체기다. 학교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쪼개어본 데이터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말마다 캠퍼스 게시판의 글은 확연히 감소하는 반면, 연합게시판의 글은 오히려 주말에 증가했다. 평일에는 학내 맥락, 주말에는 전국 단위 관심사. 이용 목적이 시간대별로 자연스럽게 분화되고 있었다. 기획할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유저 행동 패턴(Use-case)이었다.
그리고 고학번이 돌아왔다.
이 프로젝트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내 이슈에 흥미를 잃고 이탈하던 고학번 유저들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연합게시판이 열리자 고학번 유저들의 활동량과 연합 게시판 이용 비중이 크게 올라갔다.
그런데 의외였던 건 반대쪽 끝, 즉 1학년 새내기들도 같이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전 학년 중 연합게시판 이용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집단 중 하나가 바로 새내기였다. 학교 안에 아직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새내기와, 학교 이야기가 더는 재미없어진 고학번. 정반대의 이유로 캠퍼스라는 울타리가 좁았던 두 집단이 같은 공간에서 만난 셈이다.
중소규모 캠퍼스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포항공대, UNIST 같은 학교들의 활동량 데이터를 확인하고 소리를 냈다. 재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구조적으로 학내 게시판에 대화가 쌓이기 어렵던 학교 유저들의 연합게시판 의존도와 활동량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숫자를 보고 디지스트 총학생회의 요청 메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과기원 전용 게시판은 아직 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였다. 공간을 전국으로 열어주자 비로소 풍성한 대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처음 세운 문제 정의가 틀리지 않았음을 데이터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작 가장 크게 걸었던 세그먼트가 가장 빨리 식었다.
반면, 가장 과감한 목표(+50%)를 걸었던 '상대적으로 활성도가 낮은 중소규모 캠퍼스 그룹'에서는 냉정한 현주소를 확인했다.
초기 호기심에 한 번 들어와 글을 써보게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매일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리텐션(재방문)으로 연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모멘텀이 점점 약해지는 걸 보며 노트에 가만히 적었다.
'쓰기 시작한 건 맞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이유는 아직 못 만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남은 고민
출시 후 한 달은 사실 새로운 기획을 하기보다 '없어서 못 쓰던 것'을 메우는 데 다 썼다.
가장 급했던 건 글이 올라오는 속도였다. 전국 단위 게시판이다 보니 글이 쌓이는 속도가 캠퍼스 게시판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어제 재밌게 읽은 글을 오늘 찾으려 하면 스크롤 몇 번에 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MVP 스펙에서 검색과 스크랩을 뺐던 결정이 여기서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즉시 검색 기능을 붙였고, 스크랩과 URL 공유를 연달아 반영했다. 그리고 7월 하순, 첨부파일 업로드 기능을 열었다. 이 구간의 데이터 변화가 흥미로웠다. 첨부파일 기능과 신규 게시판이 배포되자 활동량 지표들이 일제히 동반 반등하기 시작했다. 방향성은 선명했다.
이 시기 일의 대부분은 '기능이 없어서 안 쓰는 것'과 '필요가 없어서 안 쓰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었다. 전자는 속도감 있는 개발로 풀고, 후자는 기획 자체를 다시 해야 한다. 이걸 헷갈리면 유저에게 필요 없는 기능을 계속 개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두 번째로 손댄 건 게시판 목록이었다. 5개로 시작한 건 초기 시스템 안정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다양한 유저들이 모여 놀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그릇이었다. 자유게시판으로 흘러드는 글들을 주제별로 추적하고 반복되는 키워드를 추출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취업·진로, 재테크, 만화·애니, 영화·드라마, 스포츠, 게임 등 관심사 카테고리를 연이어 열었다. 이어서 첨부파일 지원과 함께 당초 보류했던 핫딜, 유머 게시판을 포함해 맛집, 뷰티, 아이돌 등 이미지 중심의 카테고리까지 총 18개로 판을 넓혔다.
결과적으로 이 관심사 게시판들이 가장 활기찬 공간이 되었다. 캠퍼스 단위에서는 단 한 번도 성립하지 못했던 대화들이다. 한 학교 안에서 같은 작품을 보거나 같은 주제에 열광하는 동문을 찾기란 어렵지만, 전국 단위로 판을 열자마자 밀도 높은 대화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게시판을 새로 만들어주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대화들에 이름을 붙여준 셈이었다.
취업·진로는 특별한 케이스였다. 당초 1-pager에서는 외부 커리어 서비스로 연결하는 동선을 생각했다.하지만 자유게시판을 뜯어보니 학교 울타리와 상관없는 진로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유저가 이미 앱 안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를 밖으로 밀어내는 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결국 연합 공간에 정식 게시판을 열었다.
최근에는 MVP에서 미뤄 두었던 HOT 게시판도 실제 축적된 데이터 기준치를 산정해 안전하게 론칭했고, 과기원 연합이나 특수 캠퍼스 연합처럼 조건부 권한이 작동하는 특수 게시판들도 순차적으로 준비 중이다.
나아가 우리는 유저의 니즈를 추정하는 것을 넘어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 '게시판 제안하기' 캠페인을 진행 중인 이유다. 자유게시판 키워드 분석은 이미 수면 위로 나온 대화만 보여주지만, 아직 말하지 못한 유저의 진짜 니즈는 직접 물어봐야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은 고민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떻게 해야 유저들이 이 공간을 매일 찾아오는 '진짜 습관'으로 만들 것인가?"
연합게시판을 한 번 경험한 유저들의 체류 시간과 작성 강도는 대폭 늘어났다. 소통의 밀도를 다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매일 아침 앱을 열어봐야 할 구체적인 리텐션 고리는 아직 계속 실험하며 다듬어 나가는 중이다.
특히 이번 방학 동안 데이터로 확인했던 주말 트래픽의 상승과 세분화된 관심사 소비 패턴이, 개강 후 학기 중에도 자연스러운 일상 습관으로 유지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단발성 오픈 효과를 넘어 서비스의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풀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기능을 냈다는 것과 문제를 풀었다는 것은 다르다
1-pager를 작성할 때 나는 유입 지표의 폭발적 반등이라는 과감한 숫자를 적었다. 7월 첫 달의 결과지에는 그 숫자가 그대로 적히지 않았다.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숫자들이 들어앉았다.

방학 시즌임에도 글과 댓글 작성량이 전년 대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유저 세션당 체류 시간은 50% 이상 길어졌다. 이탈하던 고학번 유저들이 돌아왔고, 주말이면 침체되던 커뮤니티가 살아났으며, 재학생 수가 적어 늘 소통에 목말랐던 중소규모 학교 유저들의 활동량이 몇 배로 치솟았다. 5개로 시작했던 공간은 한 달 만에 18개의 다채로운 아지트로 넓어졌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PM으로서 뼈저리게 배운 것은 "기능을 출시했다는 것과 유저의 문제를 완전히 풀었다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연합게시판은 이제 겨우 '만들어졌다'의 단계를 지났다. '매일 자연스럽게 쓰인다'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처음에 세웠던 대형 유입 목표를 단번에 달성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잘된 지표만 골라 포장하는 회고는 다음 의사결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간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단일 캠퍼스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소통하는 구조로는 10년 뒤 대학생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공간의 울타리를 처음 넘어섰던 것이 '지역채팅'이었고, 그 문을 전국 단위로 열어젖힌 것이 바로 이번 '연합게시판'이다. 두 시도 모두 "대학생들에게는 학교 밖에서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훨씬 많다"는 단 하나의 명제 위에 서 있다.
이제 PM으로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넓혀놓은 이 공간을 유저들이 매일 아침 습관처럼 열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듬어가는 것.
다음 달 결과지에는 깊어진 '소통의 밀도' 옆에 '이용자 저변의 회복'이라는 숫자가 함께 적힐 수 있기를 바란다. 설령 단번에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또다시 데이터를 뜯어보고, 질문을 바로잡고, 가설을 새로 세우면 된다.
PM이 하는 일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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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종인 | 비누랩스 프로덕트 매니저
사용자의 불편을 오래 관찰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